6세대에 걸쳐 전해지고 있는 장인 정신
알프레드 드뤼(Alfred de Dreux, 1810-1860) <Duc attelé, groom à l’attente>, 에밀 에르메스 컬렉션
@ Guy Lucas de Peslouan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 1801~1878), 에르메스 창립자
© Santiago et Rottier
1880년: 샤를 에밀 에르메스(Charles-Emile Hermès)
에르메스 매장,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 1880년
© 판권 소유
1922년: 에밀 에르메스(Émile Hermès)
에밀 에르메스(Émile Hermès)와 그의 네 딸들
© Julie Hermès
1925년: 새로운 장인들의 등장
에밀 에르메스는 과거에 애착을 가짐과 동시에 자신이 살고있는 동시대에 대한 열정도 강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의지에 따라 에르메스는 새로운 장인들을 영입했고, 1925년 처음으로 남성용 의류, 골프 재킷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1927년에 에르메스는 쥬얼리를 선보였고, 이어서 1928년에는 워치와 샌들을 출시했습니다.
골프 제품 광고, 1929년
© Draeger
1937년: 최초의 실크 스카프
스카프 컬렉션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유명한 실크 스카프 ‘쥬 데 옴니버스 에 담 블랑쉐(Jeu des omnibus et dames blanches)’ 가 탄생했습니다.
1949년: 최초의 타이
타이 광고, 1962년
© Draeger
1951년: 로베르 뒤마(Robert Dumas)
4명의 딸이 있었던 에밀 에르메스는 사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었습니다. 이들 중 로베르 뒤마(Robert Dumas)가 1951년에 에밀 에르메스의 뒤를 이어 에르메스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는 최초의 실크 스카프, 미래의 켈리 백, 그리고 노르망디 항에 정박된 배를 보다가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쉔 당크르(Chaîne d’ancre) 브레이슬릿 등과 같은 에르메스의 대표적인 베스트 셀러들의 서막을 연 장본인입니다.
로베르 뒤마(Robert Dumas),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 테라스에서, 1975년
© Eva Rokos
1956년: 모나코 공주를 위한 오마주, 켈리 백
1930년대에 로베르 뒤마가 디자인한 이 핸드백은 1956년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가 이 가방을 들고 있는 사진이 전 세계에 공개되면서 그 역사가 바뀌게 됩니다. 이는 ‘성공 스토리’의 서막이 되었고 에르메스는 그레이스 켈리에 대한 오마주로 이 핸드백의 이름을 ‘켈리(Kelly) 백’이라고 지었습니다.
© Elisa Valenzuela
1960년대: 윈도우 디스플레이 프로젝트, 에르메스의 상상의 세계
1960년대 초, 튀니스와 파리에서 예술 대학을 졸업한 라일라 멘셔리(Leïla Menchari)는 아니 보멜(Annie Beaumel)의 팀에 합류하여 포부르 생토노레 매장의 윈도우 디스플레이를 함께 디자인하게 됩니다. 이후, 1978년부터 2013년까지는 라일라 멘셔리 혼자서 대담하고 화려한 창작물들을 선보였습니다. 2013년부터는 연극과 영화의 세트 및 무대 디자이너였던 앙투안 플라토(Antoine Platteau)가 그 자리를 이어받아 윈도우 디스플레이를 하나의 우아한 소극장으로 변신시키고 있습니다.
레일라 멘샤리(Leila Menchari)가 장식한 포부르 생토노레 매장의 윈도우, 2011년 가을
© Guillaume de Laubier
1967년: 최초의 여성복 컬렉션
1967년, 헝가리 태생의 프랑스 스타일리스트, 캐서린 카롤리(Catherin Kaorli)가 여성복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1980년까지 그녀는 아이코닉한 H버클을 포함한 의류와 액세서리 컬렉션을 탄생시켰습니다.
© Jean-Louis Feith
1973년: «르 몽드 에르메스» 창간
단순한 잡지라기보다 에르메스의 일지와도 같은 이 출판물은 1973년 독일에서 «디 웰트 본 에르메스(Die Welt von Hermès)» 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간되었고, 2년 후 프랑스에서 «르 몽드 에르메스(Le Monde d’Hermès)» 로 발간되었습니다. «르 몽드 에르메스»는 현재 1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1978년: 장-루이 뒤마(Jean-Louis Dumas)
1978년부터 로베르 뒤마의 아들 장-루이 뒤마는 에르메스에 점진적인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항상 멀리 내다볼 줄 알았던 그는 세상의 모든 것과 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다양한 모습으로 전 세계에 에르메스를 선보였습니다. 에르메스는 고유한 장인 기술에 기반을 둔 새로운 메띠에들을 영입하여 1978년에 La Montre Hermès라는 이름으로 시계를 제작합니다. 1976년에는 부츠 제조업체 존 로브(John Lobb)와 협력하여 신발 제작을 시작하였고, 1993년에는 퓌포카(Puiforcat)와 손잡고 금은세공업을, 1995년에는 크리스탈 제조 업체 생루이(Saint-Louis)와도 함께 하게 됩니다.
© Sacha van Dorssen
1984년: 버킨백의 탄생
버킨(Birkin)백은 장-루이 뒤마(Jean-Louis Dumas)와 배우 겸 가수인 제인 버킨(Jane Birkin)이 파리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장 루이 뒤마가 버킨을 위해 그녀가 꿈꾸던 가방을 디자인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저녁 외출에도 낮의 일상에서도 어울리는 큰 사이즈의 우아한 가방, 버킨백이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 Elisa Valenzuela
1987년: 에르메스 150주년 기념 행사
파리의 퐁네프 다리 위에서 에르메스의 150주년을 기념하는 잊지 못할 불꽃놀이가 펼쳐졌습니다. 이 기념 행사는 에르메스의 첫번째 ‘테마’가 되었으며, 그 이후 에르메스는 모든 컬렉션에 창작의 영감이 되는 테마를 매년 정하고 있습니다.
미쉘 뒤센느(Michel Duchêne)가 에르메스 150주년을 기념으로 디자인한 Feux d’artifices 까레 스카프, 트윌 실크
1992년: 팡탕(Pantin) 공방 오픈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 2층에 있었던 가죽 공방이 파리 외곽의 팡탕(Pantin)으로 이전했습니다. 새 공방은 장인을 위해 밝고 넓은 공간으로 꾸며졌습니다. 이 공방은 2013년에 5개 테마 정원으로 여러 건물들을 연결하였던 대형 프로젝트 « 시테 데 메띠에(Cité des métiers) »와 함께 더 확장되었습니다. 건축 사무소 RDAI의 주도 하에 진행된 해당 프로젝트는 2014년 프리 드 에케르(Prix de l’Équerre)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했습니다.
© Alfredo Piola
2000년: 메종 에르메스 (Maison Hermès) 뉴욕 오픈
장-루이 뒤마(Jean-Louis Dumas)의 주도 아래, 에르메스는 많은 매장을 오픈하며 전 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 각 매장들은 현지 문화와 마구 제작자의 정체성을 독창적으로 결합시켰습니다. 2000년 뉴욕(미국)의 매디슨 애비뉴를 시작으로 2001년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설계한 유리 벽돌 건물에 도쿄 긴자(일본), 2006년에는 서울(한국)의 도산공원 등 여러 곳에 메종 에르메스가 문을 열었습니다. 또한 2002년 미국에서 온라인 매장 웹사이트를 런칭하고, 3년 후 프랑스에서도 사이트를 오픈하였습니다.
© Dolorès Marat
2005년: 피에르-알렉시 뒤마(Pierre-Alexis Dumas)
6세대 가족 구성원이자 장-루이 뒤마의 아들인 피에르-알렉시 뒤마가 에르메스의 총괄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되었습니다. 다양한 메띠에들은 변함없이 혁신과 참신한 상상력을 겸비한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했습니다. 에르메스는 기술의 범위를 확장하여 기존의 주얼리 제품들과 더불어 2010년 첫번째 하이 주얼리(Haute Bijouterie)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다음 해에는 처음으로 홈 퍼니싱 패브릭과 벽지 라인을 런칭했습니다. 에르메스 호라이즌(Hermès Horizons)은 주문 제작으로 만들어지는 유니크 오브제를 디자인하고, 2015년부터는 애플 워치 에르메스 에디션(Apple Watch Hermès)을 통해 Apple과의 대담하고 혁신적인 파트너십을 시작하였습니다.
© Marianne Rosenstiehl
2006년: 패트릭 토마(Patrick Thomas)의 구조 개편
장-루이 뒤마의 바램대로, 그의 오른팔이자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그룹의 매니징 디렉터를 맡아 온 패트릭 토마(Patrick Thomas)가 에르메스의 지속적 발전을 선두지휘하게 됩니다. 그는 메띠에들을 전략적으로 분권화하고, 전 세계를 지역별로 나누어 에르메스 네트워크를 재편성 하였습니다. 패트릭 토마는 2013년 장-루이 뒤마의 조카인 악셀 뒤마(Axel Dumas)가 경영자로 임명될 때까지 2세대 간의 과도기를 책임져 준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 Studio des fleurs
2008년: 에르메스 재단(Foundation d’Entreprise Hermès) 창립
에르메스는 피에르-알렉시 뒤마의 주도하에 에르메스 재단(Fondation d’entreprise Hermès)을 창립해 새로운 차원의 후원 정책과 자선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경영 회사로서 장인 정신과 휴머니스트적 가치를 이어가면서, 재단에서는 프랑스 및 해외에서 자체적으로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창작, 기술 전승, 환경 보호, 연대의식 강화 등과 같은 분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재단의 다양한 활동들은 모두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를 만든다’ 라는 하나의 일관된 신념 아래 진행됩니다.
2010년: petit h, 역(逆)창조
Petit h 공방은 장-루이 뒤마의 조카 파스칼 뮈사드(Pascale Mussard)의 주도로 탄생해 ‘역(逆) 창조’라는 에르메스만의 독특한 접근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장인들과 디자이너들이 에르메스 공방에 남은 자투리 소재들을 이용해 에르메스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들의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기발하고 유니크한 오브제들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2013년: 악셀 뒤마(Axel Dumas)
2013년 CEO로 임명된 악셀 뒤마는 장-루이 뒤마의 조카로서, 2014년 상하이에 5번째 메종 에르메스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매장들을 오픈하면서 그룹의 역동적인 성장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2019년 에르메스는 폴란드 시장에 처음으로 진입해 바르샤바에 매장을 열었습니다. 악셀 뒤마(Axel Dumas)는 그룹의 디지털 전략을 새롭게 구축하며 2017년 hermes.com를 개편하였습니다. 그는 점점 더 온라인을 많이 이용하는 고객들의 변화에 발맞추어 에르메스를 새로운 디지털 시대로 이끌었습니다. 그의 주도 하에 에르메스는 옴니채널 방식을 그룹 조직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게 됩니다.
© Agence World Red Eye Photography
2018년: 에르메스, CAC 40 상장
Euronext가 발표한 Conseil Scientifique des Indices(과학자문위원회)의 이러한 결정은 에르메스의 산업 및 주식 시장 성과를 인정하고, 더욱 성장하는 장인 정신의 모델이 된 에르메스의 ‘기업가 정신’의 견고함을 입증합니다. 에르메스는 프랑스 내에서 대부분의 공방을 보유하고 있으며, 독창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술을 끊임 없이 전수하고 가족 기반의 주주 구조를 고수하여 독립성을 지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폭죽 기술자,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 테라스에서
© Quentin Bertoux
2020년: 새로운 뷰티 제품군 런칭
입술의 아름다음을 강조하는 컬렉션 ‘루즈 에르메스(Rouge Hermès)를 선보이며 에르메스의 16번째 메띠에인 뷰티가 처음으로 런칭되었습니다. 5년간의 디자인 작업, 연구 및 개발의 결과, 최고를 추구하는 에르메스의 정신에 고유의 노하우들을 결집하여 탄생시킨 에르메스 뷰티는 최고의 품질과 지속성 그리고 아름다움을 겸비한 제품들을 출시합니다.
© Jack Davi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