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뜰리에 에르메스"

제9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전시
송상희, 김신일, 함양아

2008년 8월 30일 – 11월 9일

차분한 목소리로 작품의 나레이션까지 담당한 송상희의 작품 <바다에서 온 메시지>는 ‘변신 이야기 제 16권’과 ‘모항으로 가는 길’로 구성된다. 전시공간 벽에 새겨진 문구는 성경 창세기 6장, ‘노아의 대홍수’에서 인용한 구절로서 작가는 ‘물’ 대신 ‘기름’이란 단어로 치환하며 바다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경고의 메시지로 전달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송상희가 제안하는 ‘변신 이야기 제 16권’은 고대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15권의 다음 챕터가 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그리스 전설을 바탕으로 우주의 생성과 변전, 그리고 그리스 로마의 전설적 역사적 인물들의 변신을 묘사한 대 서사시다. 송상희의 ‘변신 이야기 제 16권’은 연필 드로잉으로 이루어진 애니메이션 영상물로서, 성경과 진화론, 인간, 공룡, 고래와의 관계, 석유전쟁과 생태계 파괴,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학의 원리와 신화의 세계가 미묘하게 혼합된 상상력을 통해서 전개된다. 표면에 드러난 이야기는 세상의 시작과 더불어 ‘스스로’ 태어난 여러 생물체들, 인간의 형상을 가진 생물체 아메바 ‘코오라’와 공룡 ‘플레시오사우루스’과 리바이어던(고래의 기원)의 지고지순 한 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석유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인간의 무자비한 탐욕으로 인해 자연과 환경은 서서히 죽어가고, 결국에는 인간에게 복수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 이다. 그 복수극은 성경의 ‘노아의 대홍수’와 비슷한 형태의 세상의 종말 ‘대홍유’(석유로 뒤덮이는 세상)로 나타난다. 이 작업과 연결된 두 번째 영상 작업인 ‘모항으로 가는 길’은 2007년 12월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건을 근간으로 한다. 작가는 또 다른 기름유출 피해지역인 ‘의항리’에서 ‘모항’까지 가는 바닷길을 물고기의 시각으로 촬영했다. 즉 물고기가 이 태안 바다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에 대한 작업이다.

미술상 후보 중 유일한 남성작가인 김신일은 <Active Anesthesia>란 제목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활(活)역(易)마(痲)비(痺) 라는 주제 하에 전개되는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이 작업은 원통 구조물 안에 비디오 이미지 프로젝션,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오브제로 구성되어 있다. 지름 6미터의 원통 구조물로 들어 가면, 둥근 벽들에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이미지의 연속이 나타난다. 이 이미지들은 TV광고 중 특히 현혹적 장면들, 수많은 이미지의 중첩으로 집적된 정보를 나타내는 이미지, 그리고, 작가 개인적 일상의 이미지들로 이루어졌다. 작가는 이 작업의 기본개념인 속도에 의한 물질성 소멸을 구상하며 이 이미지들을 빠르게 회전하는 거울을 통해 투사한다. 이 이미지들은 빠른 회전력을 가진 거울에 의해 삼원색으로 분리 반사되어, 원형공간의 내벽에 커다란 띠를 두르며 360도 회전을 하게 되는가 하면, 바로 이 내벽에 설치된 8개의 거울을 통해 이 이미지들은 다시 한 번 반사되며, 바닥에 설치된 흑경 좌대 위의 인간의 두 개골 속으로 재 투사되기도 한다. 이 원통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사운드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최소의 소리영역, 약 30Hz, 에 가까운 음역으로 전화되어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 원심분리기가 일반속도 개념을 초월하며 물질을 세분화하는 기능을 차용한 김신일의 <Active Anesthesia-the Attitude of Cranial Revolution>는 이미지와 이미지를 수용하는 주체 사이의 관계를 미세하게 분해하며, 우리에게 마비력을 거스르는 활동적 판단력을 바탕으로 개인과 개인 주변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하려는 태도와 그것을 추구하는 환경을 제안하고 있다.

국내외 다양한 전시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함양아의 작품<보이지 않는 옷>은 상영시간 14분의 단편 ‘영화’다. 이 작업은 어느 날 꿈에서 과학자가 작가를 찾아 오면서 시작된다.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를 연상시키며, 이 꿈을 가시화 하는 과정에서 과학자와 스타일리스트가 나누는 대화로 전환된다. 두 인물은 그들의 가시적인 공간과 개념적인 공간들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과학자가 발견한 옷에 대한 신기술과 그것의 의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며, 그 대화 속에는 호기심, 열정, 불일치, 연민 등의 인간의 심리적인 기류가 가볍게 형성되어 있다. 이 작업에서 스타일리스트와 과학자가 속한 세계가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하지만, 끊임없이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미지를 불러내고자 하는 ‘열망’에서는 다르지 않다. <보이지 않는 옷>에서 표면으로 떠오르는 이슈가 타인의 시선과 존재감의 상관관계라면 그 밑에는 사회의 이미지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 세 작가의 새 프로젝트와 병행하는 또 다른 작품 세 점이 소개된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작은 공간에 설치된 송상희의 서고에는 ‘변신 이야기 제 16권’과 연관된 자료와 오브제들이 아카이브 형식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함양아의 가장 최근 작업인 <Out of Frame>동영상 작품이 보여지고, 김신일은 <Active Anesthesia>와 연관된 지름 93센티의 흑경 드로잉 두 점을 소개한다.

제9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 송상희

 

사진 남기용 © 에르메스 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