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뜰리에 에르메스"

제11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전시
양아치, 박진아, 배종헌

2010년 7월 23일 – 9월 19일

양아치 <밝은 비둘기 현숙씨>
이번 2010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에서 양아치는 이 <감시드라마> 시리즈와 작년에 시작한 <그럼에도 빙의(憑依) 소녀> 작업을 근간으로 하는 <밝은 비둘기 현숙씨>를 제안했다. ‘밝은 비둘기 현숙씨’의 이야기는 비둘기가 된 현숙씨가 자신의 집인 부암동에서 도산공원 근처의 에르메스를 오가는 도중 실제 혹은 가상의 6명 인물과의 빙의를 경험하는 과정이며, 이 작업의 스토리텔링은 빙의세계, 조류세계, 원근법적 세계와의 관계망을 생성하게 된다. ‘비둘기 현숙씨’는 스스로 자신을 일관성 있는 확고한 주체로 생각지 않고, 또 그 자체를 신뢰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비둘기 현숙씨’는 기존 질서와 시스템을 구체적으로 경험하지 못하며, 일종의 원근법적 시선에 의존해서 살아가게 되지만 스스로 소실점이 되지는 못한다. 이렇듯 스스로 일관된 주체를 신뢰하지 않는 ‘밝은 비둘기 현숙씨’는 명확한 발언 혹은 입장보다는 그 주변부를 맴돌며, 또 구체적 결과보다는 불확실한 전제조건에 의존하며, 현실에 대한 다각적이고 복합적인 상황을 전망할 뿐이다. 양아치의 <밝은 비둘기 현숙씨> 작업은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입구, 테라스, 중정, 그리고 구석의 작은 방에 설치되며, 영상, 비둘기 박제, 조화, 감시카메라, 사진, 그리고 사운드 설치 작업 등 총 6점의 단편들로 구성된다.   

박진아
박진아의 작업세계는 자신의 일상적 단편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그것을 회화로 재구성한다. 박진아의 회화는 카메라가 포착한 일상의 순간, 그리고 그 순간의 디테일을 빠른 붓 놀림과 함께 의도적인 생략적 묘사법을 통해서 기록사진의 리얼리즘을 해체하며 ‘실재와 그것의 재현’에 관계를 자연스럽게 모색하게 된다. 사진의 정지된 시간은 작가의 그림에서 빠르고 느린 리듬감을 타고 유동적 움직임을 생성하게 되며, 사진 속의 사적인 순간의 추억과 감정들은 캔버스 화면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관찰자의 시선을 통과하며 중립적 거리감을 유지하게 된다. 이것은 회화 속의 등장인물 혹은 상황이 더 이상 특정적 혹은 사적인 관계를 재현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주관적 시선/시간에서 객관적 시선/시간으로의 이행인 것이다.  

이번 2010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에 소개하는 박진아의 회화 7점 역시 그의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미술관 전시, 수장고, 작품 설치 과정을 찍은 스냅사진들을 회화로 재구성한 최근작들은 이 특정 공간과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인물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지만, 이것을 토대로 그가 그려낸 그림들은 곧 미술현장, 시스템, 관객 그리고 그 곳에서 회자되고 생산되는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객관적인 ‘현상’을 담아내고 있다.

배종헌 <일기예보>
자신의 경험과 구체적 컨텍스트를 근간으로 하는 배종헌의 작업세계는 과학, 고고학, 사회학적 고찰과 분석의 방식을 차용하며, 한 개인의 사적 영역 혹은 하나의 단편적 사건을 넘어 사회적 현상, 집단적 사고, 우리의 삶의 태도를 모색하게 된다. 이번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2010을 위해서 배종헌이 제안한 새로운 프로젝트 <일기예보>도 그의 이러한 작업방식의 연장선에 있다. 내일의 날씨를 알려주는 일기예보는 그것의 신뢰도와는 무관하게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렸고, 기후변화의 예보에 따라 우리의 삶의 태도 또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배종헌의 <일기예보>는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예보하는 과학적 분석이-그것의 오차를 포함해서- 어떻게 우리 사회와 삶을 지배하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들을 다루고 있다. 배종헌은 이번 작업에서 내일의 날씨, 천재지변, 지구온난화 등의 자연현상을 매우 자연스럽게 하지만 철저히 분석적 방식을 통해서 사회문화적 ‘징후’로 전환시킨다. 배종헌의 <일기예보>는 영상, 디지털 프린트, 텍스트, 오브제들 총 8개의 단편들로 구성된 설치작업이다.

<터너의 산>과 <프리드리히의 산>은 19세기 낭만주의 화가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er David Friedrich)와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의 작품들을 보며, 하늘과 땅과 바다와 바람과 태양을 지배할 수 있으리라 자만해온 인간의 역사를 회고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들이다. <생존자>와 <이상기후 형 인간>은 날로 강도를 높이는 자연의 역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들을 만들고 착용하는 새로운 인간 유형을 상상하는가 하면, 첨단과학을 동원한 일기예보 보다는 생활과학의 지혜가 엿보이는 <우리 집 일기예보>와 <우리 집 일기예보를 위해 고안한 기후측정기구들>을 제안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지구의 이상기후의 원천에 대한 다양한 상상들이 쌓여 있는 반쪽 짜리 <기후의 원천_콜로세움>과 이번 <일기예보> 프로젝트를 집약한 <작업집서>들이 소개된다.

제11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 양아치

 

사진 남기용 © 에르메스 재단 제공